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제1제국 (문단 편집) === 전성기 === 거칠 것 없는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위세에, [[바이에른 왕국]], [[바덴|바덴 공국]], [[뷔르템베르크|뷔르템베르크 공국]]과 같은 [[신성 로마 제국]]의 주요 제후국들조차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 [[라인 동맹]]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외교 상황은 프랑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재집권한 영국의 수상 [[윌리엄 피트(1759)|소(小) 윌리엄 피트]]가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제국|러시아]]에게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유럽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자'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폴레옹은 군사적으로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통해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붕괴시키는 한편으로, 외교적으로는 네덜란드와 나폴리 등 유럽 곳곳에 자신들의 피붙이와 믿을 만한 부하 장수들을 왕으로 부임시켜 이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또한 기존의 [[선제후]]가 대거 사라졌다는 이유로[* 18세기 말 [[바이에른 선제후국|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팔츠 선제후국|팔츠]]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카를 4세 테오도어]]가 바이에른을 물려받았으나 [[비텔스바흐 가문]]의 한쪽 대가 끊겨 다른 한쪽이 물려받을 경우 황제 선출권을 1표로 제한하기로 결정한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팔츠-바이에른 선제후 1표로 통합되었고, [[쾰른 선제후국|쾰른]], [[트리어 선제후국|트리어]], [[마인츠 선제후국|마인츠]]의 세 주교선제후는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프랑스에 합병당하며 사라졌다. 또한 하노버 선제후는 프랑스와의 밀약으로 프로이센이 하노버를 합병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선제후로 대거 임명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노렸다. 한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독일 내 투톱인 [[프로이센 왕국]]을 프랑스 편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한 반감은 독일 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갔고, 1806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 이것이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다.]을 맺고 라인 동맹에 가입한 [[바이에른 왕국]]을 침공하는데, 프로이센군은 개전 후 불과 1달도 안 돼서 수도 [[베를린]]까지 털려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틸지트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 및 군비 제한 조치를 당하고 만다. 또한 [[틸지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한다. 동맹의 조건은 프랑스가 러시아의 [[오스만 제국]]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러시아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륙 봉쇄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 당시 러시아 황제는 혁명을 이단이자 사탄과 동일시하기 전이었고 거기에 프로이센과 다르게 러시아에겐 패전의 대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후한 조약이었기에 무리없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유럽 대륙의 강자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모두 [[영향권]]에 넣어둔 프랑스의 국력은 그 당시엔 절정인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탈리아에는 교황령 및 기타 군소 공국들을 싹 다 통합하여 [[괴뢰국]]인 [[이탈리아 왕국(프랑스 제1제국)|이탈리아 왕국]]을 세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